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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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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시 꺼내 먹기, 곶감 빼 먹기 까치밥으로 남겨주었던... 남겨주었다기 보다 실은 따기가 힘들어 포기했던... 열댓 개 홍시도 감나무 가지만 앙상한 채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렇게 한해가 지나간다. 5십여 년 전이다. 학창시절 곤양 다솔사의 북암인 봉일암에서 한 겨울을 보낸 적이 있다. 주지 스님이 신중단에 감춰둔 곶감을 찾아내 절간 친구들과 하나 둘 빼먹었던 그 곶감 맛을 잊을 수 없다. 하루에 한 두 개씩 꺼내 먹는 홍시. 계절의 낙이다. 그동안 이따금 따서 저장해둔 대봉 홍시를 오늘 총 점검했다. 익은 건 익은 것 대로 다시 분류했다. 대봉 홍시를 보며 눈이 내린 산사에서 곶감의 추억을 되살린다.
2016년의 다솔사(2) 님은 갔습니다 47년 만의 다솔사. 대양루를 비켜 돌아드니 박우물을 만났다. 한 박 가득 떠서 마셨다. 1969年 1月24日(12.7) 金 乍曇乍晴 점심 후 수좌 상현군의 안내로 조실 최범술 스님을 배알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님은 서책을 읽고 계신 듯, 방안의 사방에 놓여진 장서용 캐비넷과 옆에 육중하게 걸..
2016년의 다솔사(1) 봉일암 주춧돌은 그대로인데... 이번 남도 여행에서 꼭 들르고 싶었던 곳. 다솔사. 봉일암. 그 샘터. ( 1969년 봉일암 앞에서 주지 慧潭, 처사 一心, 보살 玉蓮花, 月峰, 白岩, 順心 . 왼쪽에서 두 번째가 필자 ) 다솔사(多率寺)의 절간생활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대학시절 겨울방학 때 이불과 옷가지를 싸들고 69년, 70년 이태..
귀촌일기- 창밖의 곶감, 곶감은 왜 만드나?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지 사흘 만에 곶감걸이가 재깍 내 손 안에 들어왔다. 쌀쌀해진 날씨에 가을 햇살을 쫒아다니며 아침나절에는 감을 깎고 오후에는 매달았다. 150개다. 신바람 손바람에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내가 곶감을 만들고도 부러 찾아서 즐겨 먹는 편은 ..
혜명스님의 통화,효당이 주신 금강삼매경론 의미 알다 뜻밖에 스님 한분의 전화를 받았다. 대전 혜명정사의 장혜명이라고 소개를 했다. 어제 내 블로그에 올린 글을 읽고 물어물어 전화를 하신 것이다. 김상현 교수를 어릴적부터 잘 알며 다솔사에서 효당의 가르침을 받았노라고 말했다. 雖無切能應機說話猶如天鼓 삼십여년 전 효당 최범술 ..
김상현 교수를 애도함,45년 전 다솔사 시절을 회상하다 오늘 아침에 텔리비전 화면 밑으로 지나가는 자막을 보고 놀랐다. '김상현 동국대 사학과 교수 별세' 2011년 8월12일 이 블로그에 올렸던 내 글이 생각났다. '다솔사일기'라는 소제목으로 7회에 걸쳐 다솔사 이야기를 썼는데 마지막 분을 다시 전재하면서 김상현교수의 별세를 애도합니다. -..
다솔사 일기(7) 원효와 효당 오늘 새삼 꺼내본다. 그 때 주신 글을 007가방에 접어둔채 지금까지 그대로 있어 송구스럽다. '茶道無門'은 그렇다치고 원효대사의 금강삼매론 중의 글 -雖無切能應機說話猶如天鼓- 의 의미를 아직 나는 모른다. 당시 효당의 말씀을 듣긴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내 기억에 남아있지 ..
다솔사 일기(6) 汝矣無門 1969年 1月30日(12.13) 木 曇後雪 열흘의 산사 생활을 끝내고 하산했다. 눈덮힌 다솔사 송림 사이로 이불보퉁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내려왔다. '작품이 없다고 예술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김시습이, 서양에서는 조각가 자코메티가 보여주었다. 예술이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완성을 위해 다가가는 것이다. 1970年 1月31日(12.24) 土 晴 하산했다. 스무날도 못됐는데 내려가느냐고 혜담 스님이 말했다. 참는 것도 수양이라 인내가 없으면 성사를 할 수 없고 타성이 되면 대사를 이룰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상현군을 만나러 갔으나 없어 섭섭했다. 백암과 윤달군이 절 아래 추동까지 바래다 주었다. 다솔사에 오는 것도 이젠 어려울 것 같다. 69년,70년 각각 열흘, 스무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