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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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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50년 누구나 그날이 엊그제 같다고들 하더라. 지나고 보니 나도 그렇다. 50년 세월... ... 마당에 대봉 감나무 한 그루.
따다 만 감나무 대봉감. 힘에 부쳐서 먹을 만큼만 땄다. 감나무에 달린 홍시 임자는 지금부터 따로 있다. 우리는 이를 자연의 순리라고 한다.
빨간 홍시가 보인다 길섶 따라 지난 여름이 두고 간 들꽃들. 앞뜰을 걷다 산등성이를 올려다 보면 앞마당에 빨간 점, 점 점 점. 홍시가 보인다. 가을 꽃처럼 보인다. 이제 만추다.
오늘 처음, 매미가 울었다 앞마당의 감나무 가지인지 저쪽 느티나무 등걸에서 인지 기운차다. 도시 아파트촌 매미 떼처럼 극성스럽고 호들갑스럽지 않다. 매미소리가 들려오면 여름이 무르익어간다는 이야기... 삼복을 지나면 매미 소리도 제풀에 지쳐 늘어질 대로 늘어질 거다. 쓰르라미가 되어. 바람 한 점 없다. 햇살이 날 듯하더니 다시 우중충한 하늘. 날씨 낌새를 보아하니 이런 날은 찐다. 오늘은 움직이고 싶지 않은 날이다. 그래도 그럴 순 없어 아침나절에 서둘러 밭에 내려가 푸성귀 몇가지를 따왔다. 애호박 하나가 눈에 띄었다. 크기도 적당하고 탐스럽다. 행장을 갖추어 나서기가 귀찮아 걷기 운동을 쉬었다. 여하간 하루죙일 늘어질 대로 늘어진 한가로운 하루... 찜통더위 여름 한철에 빈둥빈둥 이럴 때도 있어야지.
감꽃도 피려하는구나! 바로 엊그제까지 개나리가 요란하더니 어느새 철쭉, 영신홍이. 감나무 어린 순에는 감똘개가... 맺혔다.
배롱나무와 감나무, 차이는? 나무가 허물을 벗는다. 봄맞이 단장을 하듯. 마당에 있는 배롱나무와 감나무를 보면 둥치에 껍질을 벗은 모습이 전혀 딴판이다. '나무 백일홍'이라고 불리는 배롱나무는 매끈하다. 너무 매끈해서 원숭이도 미끄러진다는 '미끄럼 나무'. 겨울을 지나며 언제 벗어 던졌는지 속살이 하얗다. 모든 걸 미련없이 내준다는 무소유의 의미를 부여해 절간에 많이 심는다. 한여름까지 100이 동안 붉은 꽃을 끊임없이 피어 낸다 해서 일편단심 충절의 나무로 서원이나 서당에는 반드시 배롱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여름이면 옷을 입고 겨울이면 벗는 나무... 허물을 벗어 던지는 자연에서 배운다. 배롱나무는 여기 태안군의 상징 나무다.
만추
감을 따면서 홍시로 익어가는 감나무 주변이 갈수록 요란하고 소란스럽다. 작년에 비닐 하우스에 걸어두었던 감따기 장대를 찾아 양파망으로 감망을 만들어 감따기 준비를 했다. 감 따는 묘미는 감나무 가지를 뚝뚝 뿌러뜨려가며 따는 거다. 똑같은 일이라도 맛이 다르다. 높게 달린 홍시는 직박구리나 까치떼 날짐승들에게 내 주기로 작정하고 낮은 가지에 열린 감부터 세월아 네월아 하고 쉬엄쉬엄 따기로 했다. 숫자를 헤아려보니 300 개, 석 접은 가뿐히 될성 싶다. 이틀동안 딴 감은 재활용으로 빈 보루박스에 넣어 보관했다. 두 박스에 70 개다. 곧 홍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