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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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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날'...나도 어민이다 가로림만의 남쪽, 오늘도 쌍섬이 보이는 바닷가 어도 방조제 길을 걸었다. 조수 간만으로 개펄이 훤히 드러났다. 나도 어업 면허증을 가진 어민이다. 오늘이 이라는데 이 있는 줄 이제서야 알았다.
가로림만의 일엽편주 여기는 가로림만의 남쪽. 두 섬이 나란한 쌍섬 너머로 태안반도. 이화산 능선이 청산리 포구로 이어진다. 아, 봄은 봄이로되 올봄은 바람 잘 날이 없구나...
그래도 봄은 온다 어젠 갯골이 드러났는데 오늘은 바닷물이 들어찼다. 쌍섬 너머로 이화산에 겨우 보인다. 동쪽으로 팔봉산, 팔봉 능선을 구름이 덮었다... 올 봄은 새아씨 버선발 걸음 마냥 나긋나긋 하지 않다. 한여름 장마 태풍 때도 이러지 않았다. 창대 비 강풍에 간밤은 내내 요란하였다. 대문간 홍매나 뒤안 장독대 옆 옥매를 보면 어지간히 봄이 오긴 왔다. 봄의 전령사를 자처하던 처마밑 납매는 어느덧 빛이 바랬다.
미련인가 아쉬움인가... 감태 만들기 "몸이 작살났씨유." "골병들었슈." 감태 이야기만 나오면 남여 불문 쎈소리가 맨 먼저 나온다. 다들 머리를 흔든다. 자식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내는데 감태가 한몫했다. 농어촌 복합인 우리 마을로선 감태를 만들어 내다파는 일이 농한기에 그럴싸한 수입원이었다. '죽을동 살동' 그땐 몰랐는데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 근년에 와서 다들 손을 놓았다. 호주머니에 수입이 뻔히 잡히는데도 포기하는 아쉬움이 컸다. 세월 앞에 장사 없이 늙었다는 얘기다. 지금이 감태철이다. 오늘도 눈발이 흩날렸다. 눈이 자주 올수록 많이 내릴수록 개펄의 갯골에서 자라는 감태는 달다. 올해 감태가 아주 좋다는 건 멀리서 보아도 척 안다. 이 좋은 감태를 하면서... 한두 집이 감태를 만들기 시작했다. 집에서 먹을 것만 만든다며 누구랄 ..
가로림만의 남쪽, 바다가 얼었다
도내리 감태...아, 옛날이여! 꼭 10년 전, 이맘때다.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 - - "요게, 진짜 감태!" "얼마 전에 말여, 테레비 방송에 감태가 불면증에 좋다고 나오데. 미역인지 파랜지 비춰주는디 고건 감태가 아녀." "그려, 감태는 파래, 매생이허구 다르다니께." "감태라면 가로림만 도내 감태여." "맞어유, 그 중에서도 함박눈을 맞은 감태가 달고 제일 맛있다니께." 도내 아줌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갯내음 물씬한 햇감태구이 맛이 절로 입에 감긴다. 눈이 내린다. 다시 돌아왔다. 감태의 계절... 물 빠진 개펄은 온통 푸른 감태로 융단을 깔았다. 김장 끝나고 메주 쑤고 나면 농한기... 마실도 잠깐. 삼삼오오 감태 매러 갯벌로 나간다. 일년 내내 움직이던 몸이라 근질근질해 참지 못하고 움직여야 한다. 영하의 날씨..
(歲暮斷想) 도내나루의 어제, 오늘 '복덕방'은 나를 연포, 채석포, 안흥 방면의 관광지대를 먼저 데리고 갔다. 서울서 왔다니까 전원주택지를 찾는 큰손으로 알았던 듯. 몇 군데 물건을 보여주었으나 마뜩치 않았다. 해는 저물고, 돌아오려는 데 올라가는 길도라며 자기집 근처 마지막 한군데를 안내했다. 뒤로 바다가 보이고 앞으로 넓은 뜰이 있는 곳. 안마을로 돌아내려가니 옛 나루터가 있었고, 개펄이 있고, 작으나마 모래톱이 있어 소나무 그늘을 의지해 누군가가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이 광경이 내마음에 꽂혔다. 나의 소망은 조그만 귀촌이었다. 그동안 복덕방을 거쳐간 손님들, 아무도 거들떠 보지않았던 곳을 내가 선뜻 매매계약을 결정하자, "땅은 역시 주인 따로 있다" 며 한 건 올린 안도감에 젖은 '복덕방'의 표정과 그 한마디가 지금도 생..
도내수로... 석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