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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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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계장, 수문 위로 올라가다 비가 많이 오긴 왔나 보다. 귀촌 20년에 저수지 물을 바다로 방류하는 건 처음 보았다. 방조제 너머로 갯골이 갑자기 급류가 흐르는 강이 되었다. 여름 장마가 가을 장마가 되었다는 둥 하며 올해 장마가 유별나게 길었다. 여기 충청도를 관통한 건 아니지만 수시로 들이닥친 태풍의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팔봉산 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을 마을 수리계장님이 도내저수지 수문을 작동해 물을 빼기에 이르렀다. 황금 들판이 코 앞이다.
재덕엄마의 외출 한동안 안보이던 안동네 '재덕 엄마'를 산봇길에 만났다. 말이 새댁 누구누구 엄마지 여든이 넘었다. 길가 그늘에 퍼 질러 앉아 다리를 주무르면서 쉬고 있었다. 왠일로 나오셨냐고 물어 봤더니 대답 대신 까만 비닐 봉지를 열어 보여주었다. 상수리를 주으러 멀리까지 힘든 걸음을 한 것이다. 오동잎 지면 그렇다더니 상수리 도토리가 익어 떨어지면 가을이다. 아, 가을은 익어 절로 떨어지는 계절... ... 오늘 아침에 나도 밤나무와 대추나무 밑에서 밤송이와 대추를 주웠다. 요즘 매일같이 밤송이와 대추 줍는 것도 일이다. 재깍 줍지 않으면 기렸다는 듯이 벌레 곤충들이 들여 붙는다.
억새는 바람에 흔들리고...
아침 밥상 풍속도 우리집 아침 식탁 풍속도가 두어달 전부터 달라졌다. 아침 식사는 각자 해결이다. 먹고 싶은 시간에 좋아하는 재료로 각자의 방식대로 조리를 하면 된다. 식재료는 주로 우리밭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흔히 말하는, 나는 새벽같은 '종달새 형'이고 집사람은 '부엉이 형'이다. 50년을 그렇게 살았다. 아침밥은 밥상머리 앉는 시간을 서로 구애 받지 않기로 합의했다. 피차 시원하게 자유 해방이다. 남정네가 까짓껏 한 끼 쯤이야... 30분의 조리시간에 아침 7시가 나의 식사시간. 별반 설거지랄 것도 없이 마저 끝내고 물러나면 집사람 차례다. 당연지사랄까? 7학년 5반이 되니 서로 마음 편한 게 좋다.
열무 김치와 햇고구마 음식에는 서로 어울리는 안성마춤 구색이 있다. 삶은 고구마와 새콤하게 숙성된 김치가 그렇다. 이른 아침에 안마을 버갯속영감님 댁 김 계장이 햇고구마와 열무김치를 가져왔다. 올해는 고구마 알이 제대로 들었는지 간 보기, 맛배기로 캐본 것이란다. 잔털이 보송보송한 걸로 보아 땅 속에서 가을 햇살의 지열을 받으며 비대기를 거쳐야 태깔이 날 게다. 고구마 철. 본격적으로 햇고구마를 캐려면 두어 주일 더 기다려야 한다.
농부란? 시골 농촌에서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어리석다. 농부가 아닌 사람이 있을까? 나는 농부다. 농부의 보람은 땅을 파서 다듬어 심고 가꾸는 일이다. 추수의 기쁨은 다음이다. 올해는 긴 장마로 애를 먹었다. 잡초가 기승을 부렸다. 통제불능이었다. 귀촌 20년에 처음이다. 초봄에 비닐 멀칭을 한 뒤 가을 김장 채소 심을 자리를 비워 두는데 여름을 지나며 고랑 틈새로 완전히 잡초가 뒤덮어 버린 것. 김장 준비는 다가오고... 내 키를 넘는 잡초를 예취기로 걷어내고 멀칭을 해둔 고랑을 괭이로 다시 정리해서 김장배추, 김장무, 알타리무, 쪽파, 대파를 심었다. 보름 걸렸다. 이제 드디어 뿌린 종자들이 뾰쪽뾰쪽 새싹이 되어 올라오고 모종들이 뿌리를 내리며 자리를 잡았다. 가을 햇살에 무럭무럭 자라는 일만 남았다.
성큼 다가서는 가을 밤송이 가시에 찔린다고 밤나무 밑에서 알밤을 줍지 않는 바보는 없다.
충청도에 온 고향 사과 고등학교 동기회에서 뜻밖에 사과를 보내왔다. 생산지가 경상도 합천 거창 쪽 사과다. 고향 진주 인근이다. 여기 우리 마을에도 사과 농장이 몇 군데 있다. 이웃이라 더러 사 먹곤 한다. 충청도 사과도 맛 있다. 요즘 같이 물류 이동이 자유자재가 된 세상에 경상도 사과가 충청도에 왔다고 무슨 대수가 되랴만, 왠지 감회가 유별난 까닭은 왤까? 정이 들면 타향도 고향이라는데 7학년 5반에 수구초심은 어쩔 수 없나봐.